읽게 된 계기
저는 요즘, 제가 일하는 회사와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약간의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지난 10개월 정도를 다니며 이 일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알게 되었고, 이 일에 진심을 다하는 다른 동료 분들이 대단해 보입니다.
분명 저도 계속 열심히 다니다보면 그분들 만큼 일에 애정을 가지고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뭔가 근원적인 불만족이 늘 따르는 것 같습니다.
이 문장이 정확한지는 모르지만 "이 분야에 흥미가 생기질 않습니다."로 표현하는 게 가장 가까울 것 같습니다.
아직 20대 중반이라는 적은 나이라서 그런지 더 다양한 분야와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싶은 욕심이 좀 있습니다.
최근에 든 생각이지만 저는 늘 저라는 인간은 욕심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을 돌아보니 저라는 인간은 생각 이상으로 훨씬 욕심과 승부욕이 있는 사람 같은 것 같습니다.
이 욕심을 만족시키기 위함도 이직을 하고 싶은 이유긴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25년도 회사에서 추가된 방침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주 50시간이라는 방침 때문에 더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고민이 많아질 때, 필요한 게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느낀 철학은 정답을 제시해주지는 않지만 새로운 접근방식을 제공해 줘서 같은 생활 패턴으로 인해 생각의 틀이 딱딱해진 제 생각을 조금이나마 유연하게 마사지사라고 생각합니다.
때마침 제가 자주 보던 유튜브 채널인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철학 책을 소개해줘서
"아 이번엔 이거다"라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책의 구성
이 책은 10 페이지 내외로의 책과 영화를 예로 들어 짤막한 철학이 담긴 글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서유기, 흑성탈출, 기생충, 프로메테우스, 슬램덩크, 향수 등 많은 사람이 알만한 콘텐츠가 대부분이고
이 콘텐츠에서의 인물들의 대사나 상황들을 예로 들어 철학적인 여러 이야기를 읊어줍니다.
최고 장점
저는 이 책을 퇴근할 때 자주 보았는데요
하루 종일 일하느라 복잡해진 머리를 붙잡고 퇴근길 지하철에 앉아 이 책을 피고 한 장 두 장 넘기다 보면
머릿속에 있던 시끄러운 생각들이 차근차근 조용해지면서 심리적으로 굉장히 안정된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러 인상 깊은 챕터들을 한 개, 두 개 읽은 다음 잠시 책을 덮고 눈을 감은 다음 생각을 정리하는데요.
이렇게 차분해진 머리를 가지고 집 갈 때까지 눈을 쭉 감고 있으면요, 지하철에서 아주 기분 좋게 숙면을 취할 수 있었습니다.
약간의 농담을 절반 섞긴 했지만 확실히 그런 용도로도 쓰긴 했습니다 ㅋㅋ
사람은 잠을 자는 동안 뇌를 정리하며 기억을 저장하거나 필요없는 기억은 버린다고 하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정보를 얻자마자 저장하게 되는 거니 퍼포먼스 쪽으로는 엄청나게 효율적인 프로세스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I/O 버퍼를 쓸 대 없이 낭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인상 깊은 챕터
이 책을 읽으며 재밌게 본 챕터가 3가지 정도 있습니다.
첫 번째는"나이 드는 인간을 위한 철학"으로
사람은 자연스럽게 시간이 지나면 나이를 먹죠, 저도 벌서 한 살을 먹고 올해 생일이 지나면 24살이네요.
주위 사람들이 대부분 30대 이상이니 그분들은 보통 저한테 oo 씨는 어리니까 기회가 많잖아라곤 하십니다.
그분들이 왜 그렇게 말씀하셨는 지를 알 수 있게 해 준 파트입니다.
책에서는 나이가 늘어난다는 건 본인이 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줄지만 대신에 타인의 가능성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 앞 부분만 봐도 나이가 드는 것에 대해 새로운 접근이라는 생각도 들어서 좋았습니다.
당장 제가 나이를 먹을 때 드는 조급함과 압박감을 줄일 수 있고, 후에 제가 생각하는 어른스러운 모습에 부합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다음에 나온 문장들이 제게 더 울림을 주더라고요, 이 부분은 각색하면 안되기에 책의 내용을 그대로 발췌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시간을 되찾는 일이 아닌가? 투르니에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서 나이 든 주인공은 어린 고아 소년을 떠맡게 된다. 아이의 미래를 돌보게 되었을 때 놀랍게도 그는 다시 젊음을 체험하고 청춘의 갑옷을 되찾는다.
삶이란 한 개인 안에서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타인의 미래 속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기 때문이다.
인간은 수전노처럼 자신만의 시간을 마지막 동전처럼 움켜잡고 홀로 죽지 않는다. 타인이 누릴 미래를 자신의 미래처럼 돌보기에 인간에게 시간은 무한한 것이다. 이웃에서 이웃으로, 세대에서 새대로, 미래는 불멸의 고리를 만들며 전진한다."
인생에서 산전수전 다 겪고 나서 의욕이 없어진 사람이 어린아이를 만나게 되면서 다시 인생의 활력을 얻는 이야기.
그 레파토리가 뻔하지만 감동을 주는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요즘은 꼰대다, MZ다, oo으로 남들에게 보일까봐 서로가 굉장히 조심스러운 사회라 보는데.
사실 나이 드신 분들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이유는 우리들이 가진 가능성을 소중히 보았기 때문이구나는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이드신 분들도 내가 이들에게 말하는 이유가 사실은, 타인의 가능성을 소중히 본 게 아닌 내 지난 시간을 더 유의미하게 만들기 위한 욕심이 아니었을지를 스스로 돌아본다면 더 나은 사회 분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지 않습니까?
두 번째는 "죽음을 어떻게 볼 것인가"입니다.
이 파트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신선했습니다.
사람은 인생을 살아가며 늘 죽음을 무서워하지만 사실은 죽음과 사람은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책에서는 죽음과 숨바꼭질 한다.
우리는 서로 공존할 수 없다고 표현한 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논리적으로 줄인다는 게 좀 신선했습니다.
그러면서 인간이란 삶이 유한하기에 시간을 어떻게 쓸지 고민하며 행동하고 실망하고 좋아하고 즐기기에 죽음은 사실 인간의 바탕이 되며 이는 인간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죽음에 속하고 인간에서 죽음을 빼면 공집합이 남습니다.
하지만 인간과 죽음을 교집합 할 수 없는 아주 말도 안 되는 관계인 것입니다.
사실 이 파트는 그렇게 울림이 있다기보다는 저 죽음과 삶의 숨바꼭질이라는 표현이 재밌어서 기억에 남습니다.
마지막 파트는 "바보와 천재"입니다.
이 파트를 읽고 저는 바보가 되고 싶어 졌습니다.
책에서는 세계에 다양한 천재가 있다로 시작합니다. 먹방 천재, 체스 천재, 기타 천재 등등
하지만 천재의 정의는 창의성을 중심으로 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체스를 아무리 잘하는 체스 천재가 있다고 한들, 체스를 만든 사람에 비해서는 천재성이 낮다고 보는 거죠
그가 체스를 만든 사람을 이긴다고 해도 단지 체스를 잘 두는 사람일 뿐, 창의성을 가지는 천재라고 보긴 어렵다고 합니다.
그리고 바보에 대해서는 너무 순진하기에 사람들이 가치가 있다고 믿는 존재에 대해 "정말 가치가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져 기존에 있던 체계를 다시 만들 수 있는 힘을 지닌다고 말하죠
즉 천재와 바보는 둘 다 무언갈 새롭게 만들 가능성을 지닌 존재인 것이죠.
저는 그래서 바보가 되고 싶습니다.
천재가 세상을 바꾸는 건 너무 흔하고 식상하지 않습니까? 일론 머스크, 스티븐 잡스, 아인슈타인, 유클리드 등등
하지만 바보가 세상을 바꾼다는 건 스토리적으로 좀 더 극적인 느낌이 납니다.
재밌게 본 영화 중 하나인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은 아무 의도 없이 단지 뛰는 걸 잘해서 뛰었을 뿐 인대 주위의 여러 사람들이 그 행동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고, 그 의미를 보고 사람들은 이에 동참하여 같이 뛰기 시작하고 점차 세상에 이로운 메시지를 준다는 스토리가 영화에 잠깐 나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좋아합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세상에 영향을 준다
근데 그 일을 사회의 약자인 경계성 지능 장애를 지닌 주인공이 한다?
언제나 언더독의 반란이 주는 특유의 짜릿함이 있어서 좋습니다.
저도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언젠가 세상의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영화에 주인공처럼
저도 모르게 남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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